주말도 언제나 그렇듯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똑같이 모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더군요. 오늘은 컴퓨터나 기술적인 이야기가 아닌 감상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어른들은 어릴적의 추억을 다들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좋았든 나빴든 다들 잊을 수 없는 한 폭의 그림처럼 갖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제 나이도 어느덧 30이 되어갑니다. 20대의 무모함도 이젠 거의 사그라들었고 이젠 책임감이 점점 더 막중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잠시동안 있지요. 바로 어릴적의 기억을 되짚어 가며 추억을 되살리는 시간입니다. 요즘같이 바쁘게 흘러가는 때에는 "어렸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현실보다는 미래의 환상을 그리면서 마음껏 뛰놀던 그 시기가 그리운 것입니다.


제가 다니던 중학교는 운동장이 정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컸습니다. 사실은 운동장 하나를 두 학교가 공유하는 형태였는데 운동장이 워낙에 넓다보니 축구골대가 4개에 농구 골대가 6개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고도 공간이 남아서 한쪽에서는 깡통차기를 할 정도였지요. 체력검정을 할 때 요즘은 100M가 채 안되는 학교가 많아서 50M달리기를 한다고 하던데 제가 다니던 곳은 100M 달리기 쯤은 동시에 한꺼번에 측정이 가능했고 (네. 남들 50M뛸때 저희 학교는 100M 뛰었습니다.) 오래달리기(그러니까 보통 8바퀴인지 7바퀴인지 도는 그거)는 동시에 두 곳을 돌았습니다. 말 그대로 멀티프로세스가 가능했던 탓에 빨리 끝나는 반은 점심시간 이전에 오래달리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도시 전체에서 학생 수용량도 많은 편이라서 학생들이 넘치는 다른 동네에서 그 학교로 배정받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덕분에 통학하는 방법들이 가지각색이었습니다. 자전거, 버스, 지하철(거리가 있어서 약간 좀 걷기는 합니다.) 등등


하지만 이제 그 학교는 더 이상 학생을 받지 않습니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중학교에 들어가는 학생이 많이 줄었고 교실이 남아도는 현상이 발생하는 바람에 근처 학교를 통폐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출근할 때 마다 그 앞을 지나가곤 하는데 교문이 공사장 펜스로 가려져 있기에 무슨일인가 했었습니다. 알고보니 제가 다니던 학교가 이웃한 다른 두 개의 학교와 통합되어서 사라졌더군요. 네 쉽게 말해서 폐교 된 겁니다. 조금 더 지하철 역에 가까운 학교가 이름이 바뀌어서 모든 학생들이 그곳에서 수업을 받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모교가 폐교되었다고 하니까 참 기분이 묘하더군요. 더군다나 시골도 아니고 지하철로 한 정거장만 더 가면 서울인 이곳에서 말이지요.


아직까지 학교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않기에 그저 먼지만 쌓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씁쓸하네요.


여기에 한 가지 더...


저는 자주 만나는 친구가 있습니다. 회사가 가까워서 퇴근 시간만 맞추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거든요. 그 친구와는 초등학생때 부터 같이 다녔습니다. 생각해보니 초중고 전부 같은 학교였네요. 뭐 질긴 인연이라면 질긴 인연이지요. 집도 가까운 편이라 자주 같이 놀았습니다. 학교 끝나면 같이 놀고 저녁때에 집에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특히 동네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딱히 놀만한 공간은 없었으니 골목길이 전부였다고 해야지요. 지금은 차가 많아서 그마저도 힘들지만요.


그런데 그 골목길도 이제 머지않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10년정도 진행할 예정인 재개발 계획이 잡혀버렸거든요. 향후 10년 뒤에 그 동네는 모습이 달라지겠지요. 지금 구청과 동사무소에서는 동네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서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친구도 아쉬워 하더군요. 학교가 폐교되지를 않나 동네가 재개발되어 사라지게 되질 않나...


이외에도 사라진 추억이 너무 많습니다. 어렸을적 사거리 코너에 있던 작은 호떡집은 도로 확장공사로 사라졌고, 초등학교 앞에 있던 문방구(보단 하교시간에 게임하는 애들로 북새통이었던...)도 장사가 안 된다고 문을 닫았습니다. 게다가 초등학생이었던 우리에게 사회 숙제를 도와줬던 공장은 빈 공터만 남기고 없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생한테 사회숙제로 공장에 가서 인터뷰하고 오라고 한 학교도 대단하긴 합니다.)


크라잉넛의 고물라디오란 노래를 들으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고물라디오처럼 내 곁을 떠나가버린 이제는 볼 수가 없는 싸구려 고물라디오"

중간을 생략하긴 했지만 현재 제 마음에 정확히 화살을 꽂는 가사네요.


이제는 사라진 중학교 때의 앨범과 앳되었던 제 모습을 보면서 쓰던 글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P.S 어떻게 된 게 시골에 있는 어머니가 다니던 학교보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제가 다니던 학교가 먼저 사라질 수 있는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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